성경에는 남 녀 간의 너무나도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사랑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있다. 그것이 아가서다. 아가서에는 사랑에 대한 이런 표현이 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아가서 8:6). 이 범상치 않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깊이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질문이 저절로 떠오른다. “왜 사랑을 죽음에 비유했을까?” “죽음같이 강한 사랑이 과연 있을까?”
먼저 “왜 사랑을 죽음에 비유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것은 사랑의 위력, 곧 사랑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 인생 가운데 가장 큰 위력과 힘을 발휘하는 것 옆에 사랑을 갖다 놓고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이 세상 속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인생은 이 세상 가운데 하나도 없다. 죽음은 이 사람 저 사람을 가려서 찾아오지 않는다. 잘 생긴 사람 못 생진 사람을 불문하고, 많이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을 가리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지 않고, 젊은이와 늙은이를 가리지 않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다. 그래서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브리서 9:27)라고 했다.
그런데 이처럼 모든 인생들의 삶의 끝자락에 무지막지한 힘으로 버티고 서있는 이 죽음의 위력을 보기 좋게 끝장내버리는 더 강한 힘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죽음 앞에 무릎 꿇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다. 두려움에 절절매는 사랑은 웃기는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힘이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사랑은 죽음같이 강한 것이다. 아니 죽음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죽음같이 강한 사랑이 있을까?”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들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는 말씀처럼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 두려움에 벌벌 떠는 인생들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는 “십자가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곧 십자가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곧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을 십자가의 형틀에 내 던지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십자가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우리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해 증명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생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무지막지한 죽음의 힘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사건이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사망의 그늘을 물러가게 하고, 무덤의 어두운 세력이 힘을 발휘하지 목하도록 끝장내는 것이 부활이다. 우리 주님은 친히 이 부활사건을 통해 “십자가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친히 증명해 내신 것이다.
이 사랑을 친히 보여 주신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이 죽음보다 강한 사랑에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다. 우리가 이 사랑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믿으므로 그 분 안에 거하고 그 분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도 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이 그랬고, 스데반 집사님이 그랬고, 주기철 목사님이 그랬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