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믿는다는 것이 그리 편치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거짓이 난무하고 어떤 사건에 대하여 실체적 접근이 불가능한 사회는 비극입니다. 오늘 우리의 비극은 음모론과 거리를 둘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음모론이 설득력을 갖는 사회는 정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보다 ‘믿어준다.’는 쪽이 더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믿음과 신뢰의 결핍은 사랑의 결핍에서 기인합니다. ‘사랑장’이라는 별칭이 붙은 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라고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경학자는 이 ‘믿는다’는 말을 ‘이웃에게 속을 줄을 알면서도 그에 대해 긍정적인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사랑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신뢰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면 믿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게 하고, ‘미움’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생각하지만, 미움은 최선의 상황에서도 최악을 생각합니다. 미태복음 9장에 보면 한 중풍병자가 침상에 누인 채 친구들에게 떼매여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죄를 사하시고 육신의 질병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똑같은 현장을 보고 있던 서기관들은 주님을 ‘참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선의 장면을 보면서 최악을 생각하는 서기관들의 마음은 미움으로 꽉 차있었고, 반면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랑은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이것이 가능합니다. 음악을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은 작곡가가 곡을 만들 때 떠오른 영감에 동참하고 연주자들이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있다고 믿으며 듣는 것입니다. 그림을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손길 하나하나에 자신의 모든 재능과 정성을 기울였다고 믿고 보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은 독서법은 글을 쓴 사람이 이 글을 쓰기 위해 겪은 경험과 갈등, 한 단어 한 문장을 끝까지 붙들고 씨름한 모습을 상상하며 읽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과 가장 빨리 친해지는 방법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을 귀하고 아름답게 회상하고 꿈꾸면서 만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할 때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든 문제들이 각각 의미가 있고 그것들이 실제적으로 내 삶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대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할 때 가장 즐겁게 여행하는 방법은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들이 살아온 역사가 참으로 귀하다고 믿고 대면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해 지는 방법은 그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 외에는 아무 이유도 찾지 않고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의심하면 쓰러지고 믿으면 일어섭니다.
시인 유인숙님의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을 음미해 봅니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저마다 허물이 있을지라도
변함없는 눈빛으로 묵묵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그 뒷모습 속에서 느껴오는 쓸쓸함조차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싹트는 찰나의 열정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정을 쌓아간다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그저 원하기보다
먼저 주고 싶다는 배려가 마음속에서 퐁, 퐁, 퐁 샘솟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향긋한 커피 한잔에 감미로운 음악으로도
세상을 몽땅 소유한 것 마냥 행복해 하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항상 좋은 벗이 되어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항상 좋은 벗이 되어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누가 서로에게 좋은 벗일까요. 믿게 해 주고, 또한 아낌없이 믿어 주는 관계일 겁니다.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믿음의 눈으로’ 볼 때 가능하겠지요.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 가슴에서 미움과 불신의 냉기가 올라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차가운 가슴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