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잠언 17:5)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이 곧 나를 대접한 것이다.”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조롱받을 때 하나님은 자신이 조롱받는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들이 억압받을 때 하나님은 자신이 억압받는다고 느끼십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복음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복음에 대한 실제적인 해석을 하셨습니다.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그 크신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서는 동의 하면서도, 때때로 우리는 내 곁의 이웃인 힘없고 가난한 자들, 그들을 위해서도 그 크신 사랑을 베푸셨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리고 그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함부로 대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한 영혼에 매기시는 값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사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정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바로 그 한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지 않는 것, 아니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는 것은 베푸는 것입니다. 내 곁에 있는 이웃의 부족한 반을 기꺼이 나의 짐으로 져 주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는 것입니다. 줄 수 있을 때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받을 때 보다 베풀 때 더 기쁨을 누리도록 창조된 것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입니다. 무엇인가 주고 베풀고 나눔이 있을 때 주어지는 기쁨은, 얻고 받았을 때 주어지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주는 마음 베푸는 마음에는 언제나 기쁨과 행복함이 따라 붙습니다. 그래서 베푸는 사람은 언제나 주는 삶을 잃으려 하지 않습니다. 주는 기쁨과 행복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남이 당하는 재난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에 행복이 자리 잡을 여백이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이나 이기적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마음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우러나오는 기쁨과 감사와 행복함은 그런 마음속에서는 솟아나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는 그런 마음이 자리를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훌히 여김을 받는다.”고 일갈하셨습니다. 마음의 창고에 쌓여 있는 사랑의 보따리를 풀어 헤치고 베풀 수 있다면 하루 하루의 삶이 즐거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사랑은 서로 짐을 져 주는 것이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거목이 울창한 숲에 큰 불이 일어났다. 모두 불을 피해 달아났는데 단 두 사람만이 그 불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장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절름발이였다. 절름발이는 볼 수는 있었으나 뛸 수가 없었고, 장님은 빨리 달릴 수는 있었으나 앞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고민 한 끝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다.'그렇게 해서 장님이 절름발이를 업었다. 그들은 한 사람이 되었다. 절름발이는 볼 수 있었고 장님은 걸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도와서 결국 그 불길 속을 빠져 나와 목숨을 건졌다. 우리 삶에 부족한 반이 사랑이다.”
“우리의 삶에 부족한 반이 사랑이다!” 맞는 말입니다. 너와 나의 그 부족한 반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폐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9-12) 다른 사람의 부족한 반을 사랑으로 기꺼이 져주고자 할 때 그것은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나에게 한 없이 기쁨을 가져다주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